한반도 대표 시인이라면서 문학관 하나 없는 현실이 답답하여 국제 소월협회를 출범한 게 2022년 12월 26일이다. 그 이후 매월 세 번째 수요일 오전에 수영구의 (사)유라시아 교육원에서 ‘소월시 정기 감상회’를 열고 있고, 지난 11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소월 선양기관’으로 선정되어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 대상의 제1회 국제 소월 시 낭송대회’를 부산역 유라시아플랫폼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첫 대회인데도 19개국에서 104명이 참가하였다. 세계적으로 부는 한국어 열기를 실감하게 했다. 이에 소월의 시나 또 다른 고급 콘텐츠를 보탤 수 있다면, 한류에 새로운 돌파구도 열리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황령산 생태숲에 2.3km에 걸쳐 ‘김소월 시와 함께하는 길’이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월협회 회원들과 같이 단숨에 올라갔다. 부산시의회 정태숙 의원이 발의하고 부산시, 남구청, 산림청이 협조하여 지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3억 원의 예산을 들였단다. 소월 시비는 문현동 쪽의 황령산 유원지 야외놀이터 입구에서부터 임도를 따라 쭉 10기가 세워져 있었다. 각 시비 아래에는 진달래, 꽃무릇, 수선화로 수를 놓은 작은 화단도 꾸며져 있다. 맨 먼저 우리를 반긴 건 국민 시 ‘진달래꽃’이었고,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부모’ ‘산유화’ ‘못 잊어’가 그 뒤를 이었다. ‘바람고개’ 정상엔 ‘초혼’이 우뚝하다. ‘먼 후일’ ‘옛이야기’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는 정상에서 오른쪽 아래로 조성된 편백나무 숲길에서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생태숲 2.3km 시비 10기 건립
민족 대표 시인 기리는 명소 기대
백일장·시낭송회·음악회도 열리길
부산에 소월 국제문학관 들어서면
한국 문화 교육센터 등 두루 활용
K문학 새 수도 발돋움 기회 될지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비와 시비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고, 소월의 바다 시가 몽땅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소월은 집에서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평안북도 곽산 땅에서 자랐고, 바다를 유난히 사랑하였다. 시인에게 바다는 늘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었다. 외로움과 그리움의 표상이고 상징이었다. “저 오늘도 그리운 바다, 건너다보자니 눈물겨워라…!” 소월은 ‘여수’(旅愁) ‘어인’(漁人) ‘고독’ ‘바다’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된다고’ ‘고향’ ‘삭주 구성’ ‘붉은 조수’ ‘바닷가의 밤’ 등 20여 편의 바다 관련 시를 남겼다. 바다 자체를 혹은 바다를 제재로 노래한 시가 전체 시 가운데 10%쯤 된다. 앞으로 황령산에 소월의 시비가 더 들어선다면 그런 점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어쨌거나, 서울 남산에는 한국일보사가 1968년에 세운 ‘산유화’ 1기뿐인데 우리의 황령산엔 소월 시가 무려 10기나 되니 반갑고 축하할 일이다. 서울에도 소월 문학관은 없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산유화’를 명분으로 중구의 숭례문 오거리에서 용산구의 한남동까지 3.7km를 ‘소월로’로 지정하고 걷기대회, 문화의 거리 조성, 시의 날 행사 등 다양하게 문화판을 벌이고 있다.
이젠 우리 부산이 서울을 대신할 차례다. 나라마다 대표 시인이 있지만, 꼭 그 나라 수도나 출생지에서만 국민 시인을 기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인 푸시킨은 전국의 18개 도시에 문학관이 서 있고, 칠레의 네루다도 전국 네 군데에 그의 문학 기념관이 있다. 필리핀도 국민시인 리잘을 마닐라와 세부에서 공원과 도서관으로 기린다. 평생 고향의 언어인 벵골어로만 시를 쓰고 한국을 사랑했던 타고르도 인도와 방글라데시 각지에 모두 여덟 개의 문학관이 있다. 1930년에 소련을 찾았다는 이유로 러시아 모스크바에도 타고르 문학관이 있을 정도다. 우리의 소월도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1923년 초에 도쿄상대로 유학을 가고 그해 가을에 관동대지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우리는 연고지 타령만 하고 생각의 틀이 너무 좁아 보인다. 이는 국민대표 시인에 대한 합당한 처우가 아닐 것이다. 이제, 황령산에 소월 시비도 대거 조성되었으니, 우선 이 생태숲에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소월 백일장도 열고 소월 사생 대회도 개최했으면 좋겠다. 소월 음악회, 시낭송회, 소월 바다 문학 예술제 등도 열렸으면 좋겠다. 소월은 남북통일의 상징이기도 하다. 통일 열차가 출발하는 부산에 언젠가 소월 국제문학관이나 번역 문학관이 들어서서, 부산으로 유학 오는 각국 학생들의 글쓰기센터나 한국 문화 교육센터로 두루 활용되고, 부산을 찾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정신과 얼을 다양한 언어로 전달하는 새 명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부산이 도시의 새 비전으로 정한 ‘글로벌 허브도시’, 그 글로벌 허브의 꿈은 물류, 금융,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로만 이루어질 순 없을 것이다. 문화는 도시의 품격이고, 늘 새로운 창발성을 요구한다. 글로컬 시대를 맞아 세계에 내놓을만한 부산발 문화브랜드가 무엇이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이럴 때 소월 문학의 보편성과 국제성, 소월의 바다 문학을 우리 부산이 잘 살리고 가공하여 ‘K문학의 새 수도, 부산’의 이미지를 세계인 사이에 굳혀 나가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도전적이고 발칙한 걸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82/0001323362?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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