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길, 중앙아시아 실크 로드
지난달에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로 이어지는 2400km의 여정이었다. 서부의 히바와 남부의 부하라를 이어주는 키질쿰 황야, 크기가 대한민국의 3배나 되는 붉은 사막은 기차로 일곱 시간을 가도 모래, 자갈, 마른 관목뿐이다. 그나마 눈이 내려 희뜩희뜩 날리는 바람에 적막과 황막함이 조금 덜했다고나 할까. 시대가 바뀌면서 실크로드도 달라지고 있었다. 수도인 타슈켄트엔 차량이 폭증하여, 코로나 이전에는 차로 10분이면 가던 거리를 1시간이나 가야 했다. 준법 의식도 강화되어서 차창으로 작은 쓰레기라도 버리면 누군가 득달같이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한다고 한다. 그러면 15불짜리 벌금 통지서가 바로 집으로 날아든다. 시내엔 대규모의 IT 단지가 새로 세워지고 있었다. 땅은 계속 국유지만 건물은 매매가 허용되어서 외국인도 10만 불 이상의 아파트는 살 수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도시 사마르칸트도 도시의 면모가 일신되고 거리가 복잡했다.
이번 여행의 뒷맛을 크게 세 가지로 표현한다면 더 화려해진 풍성함, 전통과 현대의 동거, 더 새로워진 다중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동서양 대륙의 사람, 산물, 사상이 만나는 실크로드는 본래 다중심의 천연색 사회이지만, 점점 더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지는 듯하다. 식탁부터가 그렇다. 이번에도 호라즘의 삼사(화덕 만두), 아무다리야강의 잉어 튀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의 쁠롭(기름 볶음밥), 터키 할랄 음식, 중앙아시아화된 이탈리아 피자, 코카서스의 가지 튀김과 포도잎 요리, 러시아의 깔바사(소시지 일종)와 카샤(죽) 등 더 다양해진 음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시는 차(tee)도 전 세계의 모든 차가 다 들어와 중앙아시아의 향과 섞이어 독특한 풍미를 내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가속되는 도시화 속에서도 전통은 곳곳에서 이전처럼 도시의 주인으로 남아, 기원전의 조로아스터도 호라즘 지방의 50여 흙 성채(kala)에 그대로 남아 숨 쉬고 있고 건축물의 구조, 벽면의 상징과 무늬에 건재했다.
2500년 역사의 부하라 시민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집안에 촛불부터 먼저 켠다든지, 결혼식 때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집 앞에 모닥불을 피우고 신부를 메고 불을 세 번 돈다든지, 조로아스터 시대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과 로마제국을 연결하던 옛 물류 창고 ‘캐러밴 사라이’, 그 창고들도 낙타와 말을 매어두던 1층 공간을 그대로 놔둔 채 호텔이나 식당으로 재활용되고 있었다. 전통 시장인 ‘보조르’나 환전, 모자, 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전문시장 ‘타키’(taki)도 수천 수백 년의 둥근 지붕을 이고 옛 멋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현대적인 백화점과 수공업자들의 공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유네스코도 이런 문화가치를 인정하여 이들 전통 공방의 가죽, 금속세공, 대장간, 도자기, 비단 제조 기술 등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있다. 중세 티무르제국의 수도인 사마르칸트도 이전의 우중충한 모습을 걷어내고 국제 관광도시로 변하고 있었다. 특히 새로 설치한 밤 조명이 품위 있고 아름다워서, 밤에 나가본 레기스탄 광장은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은은한 황금색으로 빛나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모스크, 웅장한 미나렛 첨탑 그리고 옛 종합대학인 메드레세가 검은 밤과 어울려 저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어느 도시, 어느 구역을 가나 활기가 넘쳤다. 고대와 현대가 어울리고, 지방과 수도가 각자의 각각의 색과 문화를 유지한 채로 공존하고 화합하고 있었다. 하나의 공동체 안에 고대 페르시아, 헬레니즘, 조로아스터 전통, 아랍 문명, 중세의 튀르크와 티무르 문명, 근현대의 러시아 문화가 겹겹이 쌓여있고 보존되고 있는 것도 놀랍지마는, 그 모든 지층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살아나 현대와 어울리면서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가고 있는 현실은 매우 수준 있어 보였다.
우리 부산도 거칠산국으로부터 시작하면 거의 2000년 역사의 도시이다. 그리고 갈수록 외국인이 늘어 내년쯤에는 초등학교 교실 한 반에 4~5명의 다문화 가정 학생이 입학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부산의 어디에 세계를 우리와 대등하게 인정하는 문화적 다채로움과 풍성함이 있을까. 전통은 경제 논리와 현대문명에 눌려 거의 빈사 상태가 아닌가 싶다. 사회적 요청은 각 민족의 개성과 문화를 존중하는 다중문화 사회인데, 과연 우리 부산 시민의 의식과 생활은 국제적일까. 현재의 국민소득 수치로만 세계를 재단해서는 문화민족, 문화 도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는 15~16세기의 대항해시대 이후에 사라진, 과거의 길이 아니다. 빠르게 다가오는 이 다중문화 시대에 중앙아 비단길이 사실은 우리가 새롭게 본받고 연구해야 할 미래의 길이 아닌지, 같이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