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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생 하우필 | 이재혁 | 은누리- 교보ebook출판사 서평
세상과 결렬된 자화상을 두 겹 세 겹의 액자 소설 방식으로 마치 일기를 쓰듯 그려나간 미하일 레르몬토프(1814-1841) <우리 시대의 영웅>, 19세기 전반의 사회현상을 자신의 심리적 내부와 연계한 이 독특한 소설은 25세의 청년 작가를 일약 대문호의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러시아 문학에 대한 비평계의 시선을 시에서 산문으로 전환하게 만든다. 이 자전적 소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있는데 3명의 화자(話者)가 등장한다. 그리곤 독자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이야기의 바깥에서 중심으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켜가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37년생 하우필-우리 시대의 어머니 이야기>는 장르 상 수필(essay)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사소설이고, 또 어떻게 보면 산문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글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화자와 이야기 배경과 사건이 등장하고, 작가만의 간결하고 담백함, 무엇보다 우리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작은 이야기들을 귀에 들려주는 듯한 그만의 독특하고 따스한 문체가 글의 군데군데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오랫동안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그 고통과 기쁨에 같이 울고 웃은 아들이 남기는 한 편의 <사모곡>이다.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가 같이 겪었을 비극과 좋은 결말의 서사시다.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 자식은 없을 것이고, 세상에 나와 있는 <사모의 노래>는 우리가 알듯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좀 특이하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도 때론 어머니 자신이 되었다가, 때론 아들이 되기도 한다. 관찰과 동참, 차분한 서술과 격정의 페이소스가 범벅을 이룬다.
그냥 개인적 기억에 의존하고, 기억 속의 사건들을 어느 날 밖으로 불러내는 방식으로는 이런 세밀하고 구체적인 글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작가의 개인사가 드리웠을 것 같은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빚‘ 의식, 예민한 감수성도 감수성이지만, 무엇보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메모 정신과 기록 정신 그리고 인생에 대한 애정과 숭고한 감정으로서의 연민이 합쳐서 이런 포도주를 빚었다고 생각한다.
<37년생 하우필- 우리 시대의 어머니 이야기>는 크게 2부로 구분되어 있다. 제1부는 <어머니의 노래>, 제2부의 소제목은 <여자의 일생>이다. 그러나 이 구분은 편의적인 구분이다. 있다면, 어머니로서의 강인함과 생의 지혜, 여자로서의 기구함과 고난사가 글의 곳곳에 호박범벅처럼, 진주비빔밥처럼 얽히고 얽혀 있을 뿐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미시 사(微視 史) 사가 한국 현대사의 통사(通史)일 수 있다.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한 편의 작은 드라마가 시대의 큰 역사일 수 있다. 우리 시대의 많은 어머니는 남에 의해 나라가 강탈당한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근대식 학교를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스무 살 전후의 어린 나이에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집에 시집가 일생토록 소와 말처럼 일했다. 숨이 막히는 인습과 불평등하고 고루한 가치관 아래에서 그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가족 공동체에 헌신하며, 웃음과 해학으로 그 질곡을 돌파해 나왔다.
1969년 7월 16일, 미국의 달 우주선 아폴로 11호가 약 4만 km/h의 속도로 달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라 나흘 뒤에 달 표면에 사람을 부렸다.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 20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 호에서 나온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이런 말을 준비해가서 인류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경남 진양 군에서 태어난 1937년생 하우필 여사뿐 아니라, 질곡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는 많은 김 여사, 최 여사, 박 여사를 품고 있을 것이다. 모든 가정마다 위대한 어머니가 계실 것이다.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 못지않은 그분들의 위대한 여정을 이렇게 생생한 기록문학으로 후대에 영원히 남기고자 함이 이 책을 전자책으로 먼저 펴내는 우리 은누리 출판사의 의도이다.
외세의 압제로부터의 조국의 해방, 한국 전쟁의 후유증 극복,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 정보 강국의 기적 뒤에 우리들의 어머니가 떡하니 버티고 계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말로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할 뿐, 대를 이어 폭풍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우리가 아니던가.
각자의 별로 빛나는 모든 위대한 모성에 이 작은 책을 바친다.
, " 이 책은 당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당신의 가슴 안에 잠자던 옛 기억의 불씨를 다시 살려내는
가장 고마운 편지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남의 이야기다. 37년생 어머니 하우필과 57년생 아들 이재혁의 개인적인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잘~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반드시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의 혼돈, 한국 전쟁, 가난과 궁핍의 시대를 살아낸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이고, 전후 베이비붐 시대, 박정희 개발독재, 경제성장, 군부 독재와 민주화 투쟁,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쳐 AI 시대 e-Book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개띠’ 세대, 우리 ‘전후’ 세대 전체의 이야기일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잘 살아왔으면 당신 뒤에 누군가가 있었다. 당신의 성취와 당신의 좌절을 항상 똑같은 무게로 받아들이고 받치며, 언제나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 그분이 아버지여도 좋고, 할머니 할아버지여도 좋다. 어떤 이에겐 형이나 누나, 또 어떤 이에게는 그 ‘수호천사’가 선배와 후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에 <천국으로 가는 계단>(A matter of Life and Death)이라는 영화가 있었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라는 록 음악도 있었다. 저자에게는 그 천국이 어머니라도 한다. 어머니가 바로 천국의 빛이라고 한다. 하늘에서 우리를 비추는 그 따스한 불빛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우리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개인의 이야기지만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사가 없는 전체의 역사란, 속이 없는 만두이고, 그리고 팥소 빠진 찐빵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