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문화 교사직무연수 시급(2023년 10월 26일자, 부산일보 '중앙로365' 칼럼)
- 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다중문화로 급변하는 우리 사회
시대 흐름 걸맞은 소통 능력 필요
일선 교사들 역량은 미흡한 수준
교육청 차원의 집중 연수 시급
민간 기관·전문가도 참여하는
창의적인 국제화 교육 시행돼야
중국 축구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에 또 지고 아직도 분이 안 풀리나 보다. 수비진과 공격 진용을 이어주는 미드필드가 약해서 또다시 대한민국에 수모를 당했다고 인터넷이 아직도 뜨겁다. 축구에 빗대어 생각해 본다. 축구에만 허리가 있는 게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다중문화사회(multicultural society)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과연 우리의 초중등학교에는 국제화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의 허리가 튼튼할까.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스승이 먼저 국제인이 되어야 제자가 국제인이 될 수 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다중문화사회에선 이전에 중요시되던 연산 능력이나 논리력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요구된다.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inter-cultural communication competence·ICC)이 바로 그것인데, 학자들은 21세기 ‘신 유목민’(new nomad) 시대를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이 능력이 계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초중등 교사들의 ICC는 과연 어느 수준일까. 단언하건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거의 꼴찌 수준이 아닐까, 감히 그렇게 평가해 본다. 3만 불 국민소득 수준에 맞는 선진국 수준이 아니라, 우리나라 형편이 이 부문만큼은 거의 세계 하위권 수준이 아닌가 짐작하는 것이다. 물리적인 교실 여건은 그동안 교육 당국의 투자로 엄청 좋아졌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전에는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을 가르친다”라고 했다면, 지금은 “20세기 교실에서 21세기의 미래 세대들을 19세기의 교사들이 지도하는 형국이다”라고 말이다.
수도권은 그래도 좀 낫다. 일부 초등학교에서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지구촌 사회의 문제 해결과 공존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있고, 개별 학교 차원이긴 해도 교사들이 공부 소모임을 만들어 세계시민교육을 위한 교재 연구를 같이하기도 한다. 지역사회의 국제봉사단체나 마을협의회, 교육연구원, 혹은 해외학교 등과 연계하여 색다른 체험 교육을 하기도 한다. 물론 수도권의 세계시민교육이라는 것도 기후변화, 유네스코, SDG(지속가능개발 목표) 등 ‘통 큰’ 지구적 관심사에 치중하는 한계는 있다.
그렇다면 부산의 학교 현장은 어떨까. 언제부턴가 부산에서도 학교마다 세계시민교육, 다문화교육이라는 특별 수업을 시행하고 있기는 있다. 그런데 무늬만 그럴 뿐 알맹이가 없다. 일단 전문성 있는 교사가 없다 보니, 교장이나 교사의 지시로 아무 교사나 국제화 수업을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다중문화 전문교재나 전문 교육 프로그램도 없다. 수업을 맡은 개별 교사들이 자기 경험에 의존하거나 인터넷을 뒤져 ‘검증되지 않은’ 수업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수준이라고 한다.
교사들에게 전문성 계발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일반 시민들은 낮에 각 구청의 평생학습관이나 공공도서관 등에 다니면서 글로벌 시민강좌 등을 열심히 수강할 수 있지만, 정작 국제화가 급한 교사들은 과중한 수업 부담, 산더미 같은 행정서류 처리 때문에 낮은 고사하고 밤에도 글로벌 강좌를 들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런 탓에 교사들을 모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교육청 차원의 다중문화 직무연수가 필요하다. 두 번의 방학을 활용하여 교사부터 세계시민으로 얼른 ‘성장’시켜야 한다. 지구촌이 요구하는 새로운 다중문화 교육은 이전의 단순한 영어 연수나 중국어 연수와는 차원이 달라야 할 것이다. 고도의 자동번역기와 챗GPT 시대에 겨우 영어 몇 마디 한다고 교사들이 국제화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타자와 자아의 경계가 무너져 내린 시대에, 우리와 살을 맞대고 사는 결혼이주민,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교육, 이웃 유라시아 국가가 걸어온 길과 그들이 선호하는 무늬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서 우리를 새롭게 바꾸는 그런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국제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 ‘일자리 유목민’(job nomad) 시대에 맞추어 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유라시아 대륙의 해외지역학, 경제와 통상외교 기초지식, 한국 민족교육의 요체 등이 고루 융합되는 그런 방향으로 새롭게 디자인되어야 할 것이다. 연수기관도 새 기준으로 새롭게 지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전에 해오던 관례대로 그렇게 편의적으로 특정의 어느 대학에 맡겨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구태를 벗어야 한다. 국제화 부문에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부산의 국제화를 위한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민간의 다양한 기관들도 이 중차대한 대오에 합류시켜야 하고, 다양한 지역전문가들을 참여시켜 교사연수를 위한 다중문화 교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